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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터 스토리/해버너리 가이더

망가진 추억의 뒷편에는

by 쩡만이 2023. 1. 27.

사람들은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곳으로 모여든다. 누군가의 대립과 분쟁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꽤나 고자극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각자의 의견이 갈리며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낳는다. 사람들은 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모르는게 이상할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를 끼쳤다면 사과를 하고, 서로 의견이 맞부딪치고 있다면 그 중간에서 합의점을 찾는게 이상적인 루트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서로 계속 싸우기를 부추기고, 그래서 누가 잘못했는데? 라며 꼭 우열을 가리기 바쁘다. 사건을 보는 3자들은 사실 이 끝 없는 조리돌림과 분쟁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사람들끼리 싸우고 욕하는게 지금 사회에서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니까.

 

문제는 이게 나와 가깝게 교류를 하고 있던 둘에게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나와 히로토는 처음 만남부터 뇌리에 각인되었다. 살짝 태워진 피부에 전형적인 미남상. 발성 좋은 목소리로 아이들의 이목을 휩쓸었지만. 자신의 새 학교의 옆 자리가 되었다는 이유로 더욱 나와 가깝게 지낸거 같았다. 성격도 여유롭고 할때는 하는, 아쿠아 교단 쪽에서는 보기 드문 활달한 남자였다. 그때 당시에는 다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해서 여전히 어린애 티가 났고, 나도 여전히 그러했으니 이런 적극적인 애들에게 모이는건 당연했다. 그게 더 재밌으니까. 할 얘기도 많고 왁자지껄 해지니까. 나도 히로토를 통하여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다소 정적이고 고요한 아쿠아 교단 내에서의 성격보다는 더 명랑해지고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자기 주관도 뚜렷해지고. 처음 의기소침했던 모습보다 더 밝아진거 같다며 가끔 말을 던지기도 하는 히로토. 난 그 말을 들으면 너 덕분인거 같다며 받아치기도 한다. 우린 서로 선한 영향을 주면서 중학교 3학년까지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문제의 그 전학생.. 새하얀 백지와 같은 그 남자애가 왔을때 서서히 시작되었던걸까. 히로토와는 완전 반대되는 인상을 가지고 있는 애였다. 출신도 불명, 이름도 두 글자로 카루, 과하다 싶을 정도의 친절과 배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는 품행까지 갖춘 남들이 보기엔 완벽한 인간의 표본이였다. 처음으로 뛰어본다고 하는 야구 시구에서도 홈런을 치질 않나. 힘은 또 얼마나 센지, 여러 박스를 한 번에 들고가도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친구가 되자고 손을 뻗긴 했지만.. 이건 그 이상의 아이였다. 히로토는 저런 녀석이 내 친구도 되주고~ 라면서 겉으로는 카루에게 능청 맞게 대했지만, 그 안에는 자조적인 말도 섞여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히로토는 카루를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고 있었구나.

 

히로토는 딱히 큰 능력을 지니고 있진 않은 내추럴한 인간이였다. 나는 남의 외상을 치료해주며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전형적인 도우미 역할이지만, 히로토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잠재력은 크게 많지 않은 듯 보였다. 대신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편, 그 노력으로 야구부 주장까지 올라간 끈기 있는 친구였다. 그나마 타고난건.. 좋은 목소리와 잘생긴 얼굴 정도? 신체 능력이 보통 능력자들 보다는 조금 좋다는 것? 이 정도가 내가 찾을 수 있는 히로토의 강점이였다. 그리고 그와 반대 되는 색을 지닌 카루를 생각해보았다. 전학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몸에 배어있는 친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타고난 괴력으로 물리적인 일도 뚝딱 해낸다. 사람을 끌어 당기는 능력이 있던걸까? 금새 우리 둘의 친구는 곧 카루의 친구가 되기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꽤 오래 걸리는 인상 각인을 카루는 바로 해내었다. 마치 어디서 배워온거마냥.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 히로토와 나는 그 카루를 바라보며 동경도 했지만 묘한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가장 가깝게 지내는게 우리 둘이라서 그랬던걸까.

 

그의 말에는 전혀 감정이라곤 찾을 수 없는 공허함 뿐이였다.

 

카루에 대한 장점이 강하게 보여서 과거엔 느끼지 못한 그의 결점이 생각났다. 바로 일방적인 소통. 카루는 우리에게 질문하거나 권유하는 일이 적었다. 정확히는 자기가 궁금한 부분만 답을 듣고 그걸 상기하는 정도로 사용했다. 늘 미소와 친절을 잃지 않았으나, 가끔 고민이나 학업이 힘들다는 얘기를 할때면 카루는 항상 우리를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동그랗고 큰 눈을 반짝이며 고개만 갸웃거릴뿐. 내가 느끼기에 카루의 그 시선은. " 왜 그런 고민을 하지? " 로 느껴졌다.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해야하나. 히로토와 다른 친구들에게 들었던 위로는 들을리 만무했다. 나만 일방적으로 고민을 털고.. 카루는 그저 듣고 적절한 반응만 할 뿐.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좀 눈치 챘어야 했는데 말이다.

 

이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오히려 표현하려다가 거대한 존재감에 압도되어 표출하기를 꺼려했던 속마음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임의로 만들어낸 둘의 라이벌 관계로 인하여 히로토의 불안감은 현실이 되어갔겠지. 몇 년을 노력하며 아이들과 유대감을 쌓고 만들어낸 자신의 입지가 더한 존재의 등장으로 인해, 심지어 자신의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가깝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들의 편을 들어줄거라 생각했던 그가. 자신은 늘 하던대로, "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 라는 말 하나로 히로토는 점점 나쁜 녀석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불안해하는게 눈에도 보였다. 그럴 수록 히로토는 더욱 노력했다. 내적 친밀도는 그래도 내가 더 높고, 해 온건 내가 더 많잖아?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모습은 정말 눈물겨웠다. 그러면서도 카루를 믿고 싶었던 우리 둘. 카루는 착하니까. 이 상황을 좀 나아지게 할 수 있을거야. 갈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히로토도 그래서 좀 날이 서 있어도 카루를 믿고 대화로 풀고 싶었을거야.

 

내가 너무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던걸지도.

 

기절잠에서 방금 깨어난 카루를 데리고 분노에 찬 표정을 지으며 데려가던 히로토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늘상 생글생글 웃으며 아이들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그의 모습이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내가 당황하는건 보이지도 않았을지도. 그리고 곧이어 창문 너머로 들리는 히로토와 카루가 말다툼을 하는 소리. 반쯤 실성하여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게 귀에 박혔다. 창문을 닫을까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 무언갈 내리찍어 으깨는 소리가 들려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천천히 떨리는 손을 내밀며 창문틀을 잡고 밑을 내려다보자 펼쳐진 광경. 멍하니 야구배트를 들고 서 있는 카루와 머리에 붉은 웅덩이가 생긴채 쓰러진 히로토의 모습. 그 후 자기가 한 행동을 이제서야 후회한다는 듯 미안하다고 외치는 카루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였다. 방금까지 자신을 단정짓지 말라며 크게 소리 치며 고의로 머리를 내리친 사람이 내뱉을 말인가? 이미 일은 벌어졌고. 평생 남을 트라우마로 기록 될 것이다.

 

나는 저 광경을 보곤 큰 충격을 먹고 소리 지를 힘도 없어져, 침대에 쓰러지듯 졸도했다.

 

히로토는 당연히 병원에 입원했다. 카루가 병원에 데려다 줬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부분만 알고, 우리의 셋 안에서 일어난 여러 갈등의 골에는 관심이 없다. 히로토가 심하게 다쳐서 카루가 병원에 데려다줬다. 라는 문장만 우리 학교 내에 퍼져나갔다. 물론 그 둘의 친구였던 나에게도 질문이 들려왔다. 왜 다쳤냐는 질문부터, 카루는 왜 학교에 나오지 않냐는 말. 점점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머리 속에서 왜곡되어 소음으로 인식되었다. 꼬이고, 계속 꼬여가며. 그럼에도 여기서 또 무너지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줄 수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가는게 느껴지고, 발음이 숨소리에 의해 먹혀가기 직전. 화장실 구석 칸에 문을 잠그고 그때 장면을 혼자서 되새겨본다. 심장이 쿵쿵 뛴다. 둘을 갈등으로 몰아넣은 소문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로 대처되어갔다. 우리들을 그저 유흥거리로 이용해 먹은거야. 그저 새로운 대상이 필요 했으니까. 히로토가 다시 학교에 돌아와도, 그는 예전과 같은 텐션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물론 말을 걸면 쾌활한 성격이 묻어나긴 한다. 동공의 초점이 떨려가는게 보일 뿐이다. 머리에 두르고 있는 붕대. 잠을 치세웠는지 생긴 다크서클과, 차갑고 수척해보이는 몰골. 대화를 해도 금방 지치는게 보이고. 그를 향한 시선도 동정과 안쓰러움이 묻어날 뿐이였다.

 

히로토는 정신이 반 쯤 나가고 휘청거리는 상태로 나에게 갑자기 고백을 했다.

 

" ....그 새끼들이 했던 말이 맞아, 난 널 좋아하고 계속 같이 있고 싶어, 근데... 여기서까지 너마저 날 놓으면 무너질거 같아 무서워. 어쩌지? 예전 만큼 잘해줄 자신은 없지만 기대고 싶어. 너랑 난 앞으로도 함께잖아 그치..? 비아야... "

 

자신감 넘치고 가끔은 허영심이 보이기도 하는 여유롭고 능청맞은 모습은 먼지도 없이 사라지고 무너졌다. 몇 개의 단어는 뭉개버리듯 발음을 해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보건실에서 마주 보고 앉은 상태로 불완전한 문장을 내뱉는 그의 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상실감과 울분이 느껴졌다. 나도 입술을 꽉 물고 주먹을 쥐고서 최대한 감정을 내뱉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카루가 왜 저런 행동을 했던걸까? 히로토가 심한 말을 해서? 그거 하나로 한 사람 꼬라지를 이렇게 만들어도 된다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감정엔 충분히 동화되고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고백을 받을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성사되는 관계는 결코 아름답지 않아. 서로에게도 좋지 않고, 히로토도 의존적으로 변할게 뻔했다. 결국 난 정중히 거절하고 먼저 보건실을 나갔다. 최대한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 집으로 향하려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나도 마음이 너무 허탈한 나머지, 그냥 빗길을 우산 없이 걸었다. 가방과 옷은 전부 젖겠지만. 이걸로 내가 우는 눈물이 가려진다면야. 비가 떨어지고 지면에 부딪히는 소음으로 내 슬픔이 타인에게 노출되지 않는다면....

 

카루의 행방은 그 이후 알 수 없다. 병원에 데려다 줬다는게 그의 마지막 행적이다. 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히로토도 그 이후 보건실에서 쓰러진 상태로 발견되어 응급실로 운송되었다. 이렇게 소중했던 존재를 잃을 때마다 부모님의 얼굴이 너무 그리워진다. 나를 나오게 해주신 고마운 존재와, 일생을 공유하며 동질감을 쌓은 친구를 전부 잃었다. 히로토와 카루를 제외하고 친구가 없던건 아니다. 히로토는 나에게 학교에서의 첫 친구였고, 카루는 많이 특별한 친구였다. 여러 의미로. 나에게 참 다양한 경험을 선사했지. 좋은 추억도, 끔찍한 악몽도 같이.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히로토는 다행히 졸업식에는 등장하였다. 여전히 머리에 붕대를 차고 있긴 하지만, 친구들과 오랜만이라는 말과 함께 근황을 얘기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괜찮아진거 같아서 내적으로 안심하였다. 나도 친구들과 지금까지 고마웠다는 얘기를 전했다. 나는 페리페티아 라는 명문 학원에 합격하였고, 대부분의 친구들과는 작별하게 되는 운명이다. 그 안에는 히로토도 포함되어 있다. 나랑 다른 길을 걷게 되겠지.

 

" 하하, 꽤 오랜만이네, 많이 안색이 나아진거 같아서 다행이야. 히로야마. "

 

" 너야 말로 페리페티아 학원에 붙은거 축하한다~ "

 

" 앞으로 볼 시간이 줄어든다는게 아쉽네, 넌.. 정말 좋은 사람이였는데. "

 

"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종종 연락하라고, 잊혀지긴 싫거든 나. "

 

" 응... 고마워, 잘 지내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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