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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터 스토리/해버너리 가이더

절망에서도 추억과 희망은 피어난다

by 쩡만이 2023. 1. 25.

내가 11세에 일어난 일이였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이그니아 연합국의 침공. 원래부터 아쿠아 교단과 상반되는 성향과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며 폭리를 취하려는 그들의 탐욕스러움에 결국 아쿠아 교단에서 취하던 포용적인 자세를 처음으로 내려놓고서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맑은 하늘과 웃는 아이들의 사이에서 어떤 검은 후드를 쓴 남성이, " 신은 죽었다!!!! " 라며 크게 외치며 발생한 총기난사. 그 발포가 시발점이 되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그니아 군인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에 습격해왔다. 평화롭던 바닷가도 지옥불과 같은 붉은 빛으로 변하였고. 예배를 드리던 성당도 공들인 시간이 무색하게 힘 없이 계속 무너져 파편만이 근처를 애워쌀 뿐. 그리고 이 혼란의 시기에 도망치던게 바로 나. 실리비아였다. 분명 나라 중심에 있는 성당에 계실게 뻔한 자신의 어머니,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머니를 찾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 순간에도 귀를 울리는 총성은 멈출 기미가 안보였지. 무섭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나를 업으시고 중심가로 향했지만, 당연하게도 가장 눈에 잘 띄던 곳이였기에 이미 붕괴되어 있었다. 항상 정오를 알리던 종도, 항상 하늘을 보면 있던 커다란 십자가도 순식간에 이그니아 군대에 의해 하나 둘,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어머니는 얼굴이라도 봤음 좋았을텐데, 이미 건물 파편에 묻혀서 질식사 했을게 뻔했다. 침착했던 아버지가 이토록 절망하며 우는건 처음이였다. 망연자실하여 그저 동공에 불타고 있는 나라의 전경만 바라보는 공허한 눈빛. 어린 마음에 난 무서워서 계속 아버지의 등에 꼭 붙어있었지. 그리고 이그니아 군대가 우리 둘을 포위하기 직전, 아버지는 업고 있던 나를 안아들고 정말 사랑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였다. 그의 손에서 나온 따뜻한 물이 나를 감싸 동그란 물방울이 되었고, 일렁이는 물 속에서 물방울 표면에 손을 대고 아버지의 얼굴이 일렁이는걸 바라보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을 보여주며 나를 저 멀리 힘껏 던지셨다. 가벼운 깃털이 된거 마냥 아주 높이, 멀리 날아갔고. 어린 마음에 무서워서 크게 아빠를 목이 닳도록 불렀지만, 점점 멀어져가는 나라 풍경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아버지는 당연히 저항을 하다가 목숨을 잃으셨지. 이걸 알게된건 내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을때. 이게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였다.


하염없이 잿빛이 된 하늘에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본능적인 공포에 휩싸여 물방울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고, 그대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건지 눈을 꼭 감았다. 아버지의 바램이 이 작은 물방울에 담겨있던건지, 내가 향한 곳은 카시우스 제국에 있는 이모네. 이모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창문을 바라보셨고 조그맣게 날아오는 빛나는 물방울을 확인하며 받으러 나오셨다. 물론 난 이미 어린 머리에 더 이상 들어갈게 없다는 신호였는지 의식을 잃은지 오래였지만. 정신을 차리니 방금전 봤던 불타는 광경이 전부 꿈처럼 느껴질 것만 같은 푹신한 침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모와 이모부의 얼굴이 눈에 담겼다. 보자마자 눈물이 글썽이며 그들의 얼굴은 아른거리며 흐트러져갔고. 이모는 날 안아주며 토닥일 뿐이였다. 카시우스 제국에서 잠시 살고 있었기에 아버지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날 이곳으로 보낸게 분명했다. 전쟁은 금방 카시우스 기사단의 지원군 파견으로 진압되었다. 내가 일어난 지금은 많은 이그니아 군대가 철수하고 나라 복원 작업에 힘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나라가 복구된다고 해도 내 부모님이 잘 살아계시진 않다는게 가장 슬픈 점이였다.


그 후 나는 어린 나이에 이모네에 거두어져 마치 친자식 처럼 대해주셔서 적응하여 잘 살고 있었다. 아쿠아 교단으로 돌아가는건 무리였기에 복구되는 날까지는 카시우스 제국에 머물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 견학을 온걸 제외하고서 밟아보는 수도권 땅. 신의 대리인, 천사들이 만들어놓은 지상 낙원이라는 말에 버금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어린 나이에 마냥 신기해했던거 같다. 카시우스 제국에서도 이번 폭격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조사하고 있었고, 운 좋게 그들의 지원을 받아 정착이 수월해졌다. 이모의 말을 따르며 아쿠아 교단에 있지 않아도 집에서 다같이 예배를 드리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집에 있는 성경책을 읽었다. 가끔 부모님 얼굴이 아른거려서 눈물로 밤을 치세운 적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거두어진지 1년, 3년. 중학교에 입학 할 나이가 되어갈 쯤에, 나라 복구가 90% 이상 되었다고 하여 오랜만에 이모네와 함께 고향 땅을 밟았다. 사망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성당 뒤에는 수 많은 묘가 생겼고, 그 안에는 나의 부모님도 계셨다. 준비한 하얀색 꽃을 내려놓으며 눈물을 꾹 참았다. 정말 보고싶었고 그리웠는데, 이렇게 밖에 만날수가 없다는게 억울했다. 갑자기 쳐들어와 우리의 교리를 부정한 그들이 미웠다. 도닥여주는 이모부의 손길은 따뜻했다. 날 좋은 분들에게 날 맡겨줘서 고마워요 아버지. 그때 현관을 나가실때 더 많이 안아줄걸 그랬어요, 어머니. 비록 이번 삶에는 만날 수 없겠지만, 늘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배푼 모습을 보고 신께서 천계로 끌어주셨을거라 믿고 있어요. 슬픔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 손에는 어머니가 늘 지니고 계셨던 은색 십자가 브로치가 들려있었다.


비록 나라가 복구 되었지만 학교는 카시우스 제국에서 다니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더 많은걸 배우고 쌓아가겠다는 마음 가짐을 굳게 먹고서 중학교에 입학했다.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자신의 용모를 체크한다.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에 오늘 하루동안 지켜봐주시라는 기도를 부모님과 찍은 가족 사진 앞에서 하고는 현관을 나섰다. 제대로 다니는건 처음인 카시우스 제국에서의 학교 생활. 두근대긴 하지만 여긴 워낙 엘리트들이 많다고 소문이 나서 걱정도 들었다.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지나치고서 정문에 들어서자, 가방을 맨 수 많은 학생들이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 나도 이 단체의 일원이 되는거구나.. 라는 묘한 기대감을 품고서 배정 받은 반으로 들어선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서로 사담을 나누고 있었고, 북적북적 거리는 분위기에 단지 가방을 어디에 둬야할까.. 라는 고민과 주변에 전경을 눈으로 훑었다. 비어있는 자리가 있다. 일단 모두 초면이다보니 살짝 겁을 먹게 된다. 앞에서 두번째 자리. 비교적 아이들이 앉지 않는 쪽에서 가만히 가방을 정리하고 있을 뿐. 마음에 안정을 주기 위해 가져온 성경책을 펼쳐서 읽으려해도.. 아이들의 소리가 귀를 맴돌고 있다. 내가 외부와 어떻게든 신경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에, 어느새 아무도 없는 내 주변에도 사람들이 점점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등교 시간이 1분 정도 남았을 무렵, 복도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우리 반 문 앞에서 멈춰섰다. 그 순간 울리는 수업 시작 종. 벌컥 열리는 교실 앞문. 검은 머리의 남학생이였다. 아이들은 말을 순간 멈추고, 그 남학생에게 모든 시선이 몰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 옆에 앉아도 되지? "

 

" 어? 어.. 그래. "

 

" 딱 맞춰서 오긴 했네, 어때. 첫 인상으로 확 박히지 않냐 얘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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