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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렐 월드/타케이 노라

사후, 귀신의 독백

by 쩡만이 2021. 10. 21.


내가 알던 넌 이미 떠났고.

내가 모르는 너가 남아있어.

그때 넌 날 구해주지 않았고.

지금 넌 날 기억도 못하지.

소중한, 소중했던 친구.

널 용서할 이유가 없는거 같아.


날 죽인 그 여자와 같이.

너도 그 곳에 나 처럼 묻어줄게.

그래야 공평하잖아.

아.

역시 인간은 질색이야.


늘 그랬듯 하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던 네 모습. 하지만. 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날 죽인 그 여자와 겹쳐보이는건 왜일까. 아니면, 애초에 너랑 그 여자. 물보다 진한 관계였던건 아닐까. 사실 그 여자의 얼굴과 네 얼굴이 닮아보이는건. 살아 생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그렇기에 가끔은 그 붉은 눈이 무서웠다. 소름돋을 정도로 날 쳐다보던, 그 기분 나쁜 시선. 그 시선은 너와 정말 닮아있었다. 그렇게 난 그 시선에 사로잡혀 깊은 구렁텅이로 빠졌지 배는 따듯했던거 같아. 피가 흘러 넘쳐서. 그 흙 바닥이 흥건해졌을때. 그때의 네 울음소리가 미세하게 기억이 났어. 살려달라면서 여자한테 빌던. 내가 알던 그런 모습은 어디로 가고. 나 대신 살아주기 위해 노력하던 넌 어디로 갔지? 이미 먼지처럼 사라진걸까. 사실. 영혼은 그 산에 남아있지만. 내 육체는 그 여자에게 끌려가 영안실에 잠든 상태. 언젠가 눈치채고 와주지 않으려나- 하고 산에서 기다리는거도 이제 지긋지긋해. 넌 이미 그 여자와 한 패잖아? 네 부모가 날 죽였음에도. 기억조차 못하고 찬가를 부를 뿐. 역시 더러워. 이중성 역겨워. 너희같은 쓰레기를 만든 신도 증오스러워. 이미 죄인이면서 다 씻어내렸다는 듯 그러는 위선도 혐오스러워. 내가 너한테 느끼는 감정이. 뭔지 알아?

분노. 넘쳐흐르는 피와 함께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원통함. 인간에게 눈도 잃고. 생명도 잃어버릴 정도로 내가 그렇게 나쁜짓을 저질렀던가? 기억 못한다면. 다시 찾아가줄게, 그리웠던 친구. 물론. 내가 널 기억하는 모습과 다르듯이. 나도 좀 많이 바뀌어 있을거다. 원통함에 이승을 제때 떠나지 못한. 원귀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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