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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터 스토리/루인 섀도어

정체성

by 쩡만이 2022. 11. 7.

" 넌 이미 사라진지 오래일텐데? "

 

무의식의 공간, 끝 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서 둘은 만났다. 진실 되었지만 사회에 섞일 수 없는 자신과, 거짓 되었지만 인간성을 지키고 있는 자신. 두려움과 공포가 눈에 그대로 맺혀있는 나약한 녀석에게 나는 더 이상 나올 필요 없다며 회유할 뿐이다. 고통을 그 만큼 느꼈으면 이 현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을텐데, 애초에 넌 죽는게 최종 목표였잖아. 내가 이 육체를 차지하면서 너는 죽은거나 다름 없을거야. 근데 왜 다시 내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거지?

 

" 내가 원한건 이런게 아니야, 당장 내 몸을 돌려줘!! "

 

내 몸? 실소가 터졌다. 어딜봐서 이게 니 몸인데, 어둠도 제어 못하고. 자신의 탄생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텅 빈 새끼가 어딜 봐서 육체의 진짜 주인이라는거지? 다시 인간 행세라도 하고 싶은건가? 아니면 굳이 현실로 기어들어와 멸시 당하고 배척당하는 삶을 계속 유지하려는 변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건가? 내 머리로는 절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비슷한 존재라도 이렇게 사고 방식이 다를 줄이야. 애초에 넌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는 녀석도 아니였어. 거짓으로 점철된 너 같은 녀석이 살 수 있는 자리는 존재하지 않아.

 

" 죽고 싶다고 했잖냐, 그럼 얌전히 그 곳에서 잠들면 편할텐데? "

 

난 맞는 말을 하고 있다. 틀렸다고 생각 안한다. 몇 년 동안 녀석을 봐오면서 귀가 닳도록 들었던 말을 다시 반대로 돌려줄 뿐이다. 그 말을 들은 녀석은 잠시 멈칫하며 말을 꾹꾹 눌러 담는 표정이였다. 몇 초의 정적 후, 입을 열며 외치는 말은 참으로 가관이였다.

 

" 이건 죽은게 아니잖냐, 정신이 살아있는게 어딜 봐서 죽은건데! "

 

아무리 말을 해도 못 알아 먹는게 참 한심할 나름이였다. 영원히 잠을 자는게 죽은거랑 뭐가 다르냐는 말을 해대며 녀석을 계속 밀어 붙였다. 발 걸음을 옮기며 그의 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상대 머리를 한 손으로 붙 잡고는 잡고선 흔들었다. 정신 차리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 그럼 니는 다시 지옥 같은 삶을 반복할래? 다시 장기가 파열되고, 안구가 적출되야 정신 차리냐? "

 

모르모트로 이용되면서 타인의 전유물이 되는건 정말 견딜 수가 없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간들에게 빌빌대며 그들과 같아지려는 약한 마음이 정말 꼴불견이다. 어려운 선택을 하면서까지 여기에 남으려는 이유가 뭐지? 계속 머리 속에 생기는 궁금증 때문에 머리가 아파온다. 생각할 수록 감정이 고조되어가며 그에게 향하는 폭력도 점점 거칠어졌다. 머리를 잡은 상태로 바닥에 내팽겨치고, 발로 다리 부분을 짓밟아대며 상대가 아파하는 신음을 잡음 없이 들을 뿐이다. 이 어두운 무의식 속에서는 우리 둘 밖에 없어. 누구도 널 구해주지 않아. 넌 이룬게 뭐가 있지?

 

" 난 니가 진짜 싫거든. 처음 만난 그 순간 부터 원망했다고. "

 

내 몸을 가지고서 자존심을 바닥내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방황하며 은혜도 잊어버리고, 그저 기생충과 같은 삶을 사는 너는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그 무엇도 일구어내지 못한 하찮은 영혼. 동정의 여지도 없이 내 손으로 짓이겨버리고 존재를 지워버릴 것이다.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내 정신을 흐트러트리지 말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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