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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터 스토리/루인 섀도어

- Epidermodysplasia Verruciformis -

by 쩡만이 2022. 7. 12.

(지금 학교라 그림 못 그리니 글이라고 쓰고 갑니다 / 어제 요청한 소재의 연장선, 주관적인 캐 해석)


" 나야기, 오늘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

네가 물었다. 지금까지 밥 먹여준 값으로 자신이 시키는 일을 해달라는 소리였다. 어떤 일이길래 나한테 도와달라 하는 거지? 그리고 집이 아니라 자신이 다니는 식물원으로 가자 하였고, 일단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켜선 안되니까, 몸을 최대한 감싸고, 모자를 눌러썼다. 현관을 나서면서 넌 내 손목을 잡고 놓질 않았다. 꽤 세게 잡는 거 같기도 한데, 이렇게 끌고 가야 할 이유가 있나?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우리는 가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말을 먼저 걸 법도 한 녀석이었는데, 오늘따라 조용하다. 낯선 공기가 주위를 감싼다. 평소에 네가 향하는 지름길로 들어간다. 와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곳..

" 야, 그래서 뭘 도와달라는 거야. "

난 계속 걷는 게 지루하다는 듯 너에게 칭얼대듯 말했다. 가면 알게 될 거라며 조용히 하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간단한 일이라면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야겠다. 요즘 어딜 돌아다니냐며 나에게 동정을 베푸는 녀석도 있지만, 역시 혼내는 놈들이 더 많았다. 최대한 자극 안 하려고 하는 게 느껴지는 보살핌이다. 어린애 취급하는 거 같아 기분이 좀 더럽지만, 때리고 팔 자르는 거 보다는 훨씬 낫겠지. 거의 다 도착했는지 풀내음이 코를 찌른다. 거대한 식물원.. 라기엔 연구소 같지만. 날 이런 곳에 데려와도 되는 건가? 저번에 하나 잎 잘라냈다고 나가라며 쫓아냈던 녀석이면서. 손목을 더욱 꽉 잡는 게 느껴져 얼굴을 찡그렸다. 손을 움찔거리는 걸 느꼈는지 넌 이제서야 아팠냐면서 사과한다. 내가 어디로 튈지 몰라서 불안감에 그랬다는데, 애초에 그럼, 원인을 안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 멍청하긴... "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사람은 많이 없나, 불이 거의 꺼져있는 건물 안에 들어와서는 나를 놔준다. 원래 새벽 시간에는 사람이 없다는 듯 가볍게 넘기는 말투, 그러려니 했다. 넌 저 멀리 있는 창고에서 물건을 하나 꺼내와 달라고 한다. 기다랗고 큰 막대기가 있을 거라며, 한 2개 정도만 가져와 주면 좋겠다고. 대강 눈짓으로 알겠다고 하고는 터벅터벅 문 앞으로 걸어간다. 서늘하고 조용하다. 어둡진 않지만.. 이런 풍경은 여전히 스트레스다. 철로 된 차가운 하얀색 건물 안, 생각하지 말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위를 멍하니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 야, 아무것도 없는 거 같은데? "

창고라고 칭한 곳은 텅 비어있었다. 안에 네가 말한 물건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잘못 알려준 건가 싶어 다시 뒷걸음으로 나오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날 세게 밀쳤다. 그 자리에서 바닥에 넘어지는 나. 고개를 돌리니 아래에서 날 내려다보는 네가 보였다. 눈꼬리로 웃는 얼굴을 표현하더니 문을 닫고 잠가버린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내면에서 공포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창고라기엔 너무 터무니없이 넓다. 천장을 바라보니 여러 개의 작은 구멍들이 나를 쳐다보는 거 마냥 수놓아져 있었다. 멍하니 보고만 있었는데, 치이익- 거리는 굉음과 함께 그 구멍에서 하얗고 불투명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놀라며 본능적으로 코와 입을 막는다. 들이마셨다간 어떻게 될지 몰라, 이미 당해봐서 알고 있다. 연기가 방안을 전부 뒤덮기 전에 최대한 낮게 몸을 웅크린 채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저 멀리 보이는 또 다른 문, 한 손으로 밀어보았지만. 역시 열리지 않았다. 그림자를 쓸까 했지만, 코와 입을 막고 있음에도 점점 연기가 안으로 들어오는지, 정신이 흐려졌다. 꽤나 독성이 강해. 난 문을 몇 번 힘 없이 두드리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내가 쓰러진 걸 확인하기 위해 온 의문의 형체만이 희미하게 보이는 상태로 의식을 잃었다.


" .......... "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는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에 강하게 묶인 듯. 확실히 구속돼있는 게 분명했다. 여전히 약 기운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묶인 거.. 풀 수 있을 텐데,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간다. 금방 그림자에게 시키면 돼. 얼른 묶인 걸 풀어줘야..

" ................ "

어둠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능력조차 가늠하기 힘들어졌다. 감정선을 읽을 수가 없다. 약 때문인가? 그보다.. 그 새끼, 날 부른 건 이러려고 그런 거야? 아주 보기 좋게 배신당해버렸네, 역시 인간을 함부로 믿어선 안되었다. 친구라는 사탕 발린 말로 날 끌어들이더니 덫에 완전히 걸려든 걸 보곤 비웃고 있겠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모순 덩어리인 녀석들, 잠시 동안이야. 잠시 동안.. 힘을 되찾으면 바로 나가주고 다 죽여버릴 거야, 어떤 말도 듣지 않고 그냥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 상태는 어때? 나야기. "

들려오는 음성, 익숙하고 힘이 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납치한 주범이자. 날 속인 배신자. 네 옆에는 여러 사람들이 뒤에 서 있었다. 모두 같은 복장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아, 싫은 기억이 계속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계속되는 두려움에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꽤나 절망에 빠져 살려달라는 눈빛만을 보냈겠지. 그리고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눈을 마주 보며 말을 걸었다. 그녀의 눈 또한 붉은빛이지만.. 어딘가 탁하고 초점이 없어 보이는 섬뜩한 눈을 하고 있다.

" 지금 날 왜 배신했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너도 날 맨날 죽이겠다 협박했잖아? 이건 그 벌이라고 생각해. "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약이 여전히 내 머리를 어지럽히며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뇌가 굳어간다. 둔해지는 기분이 든다. 눈이 풀려간다. 피부에 차가운 철의 감촉이 닿을 때마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녀는 이런 나를 보고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늘 들려주던 목소리로 차근차근 말을 한다.

" 어느 정도는 짐작했잖아, 친구. 그 녀석들처럼 야만적이진 않을 테니까. 협조 부탁해. 나야기 테라. "

친구는 무슨 친구일까. 친구라는 뜻을 실험체로 알고 있는 거라면.. 만남부터 잘못되었다. 그냥.. 그냥 죽였어야 했어, 이래서 차라리 감정이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마지막에 내 이름을 부를 때는 귀 부분을 손으로 쓰다듬듯 만지더니 속삭이며 그녀는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흰색 가운의 사람들. 입에다가 소리를 낼 수 없도록 강제로 무언갈 물게 만들었다. 입을 움직일 수가 없다, 소리가 뭉개지기 시작한다. 바늘이 내 팔을 관통한다. 약물이 주사되는 감각이 느껴진다. 끔찍하고 괴롭다.

[처음 보는 개체. 배 속을 보고 싶다. 커다란 귀는 무슨 용도일까. 날카로운 손톱.. 짐승과 같다. 심장은 거의 뛰지 않는군.]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여서 듣기 싫은 소음이 되어 나에게 인식된다. 내 몸에 손대지 마... 이 정도면 충분해, 장난이라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이 상황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품는 내가 정말 싫고 끔찍하다, 왜 인간을 믿은 걸까. 얌전히 녀석들이 하라는 대로만 했어도 이 지경은 안 되었을 거 같은데. 내 판단 미스다. 가문의 수치겠지. 애초에.. 그 녀석들, 나 잊었으려나. 이대로 돌아가도 반겨주진 않을 거 같아서 두려워졌다. 그 일말의 생각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그들은 내 옷을 천천히 벗기고, 칼을 피부에 댄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갈라지는 내 복부, 직접 당해보는 건 처음이야. 녀석은.. 이런 걸 계속 겪고 있었다는 건가. 고통스러워, 소리를 내질러도 입에 물린 거 때문에 그저 아기가 웅얼거리듯 받아들여지겠지. 배가 갈라져도,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회복이 되기 때문에. 제일 걱정인 건..

[바로 다시 붙는데? 회복력 엄청나네, 뭔가 고정할 거라도 가져와.]

회복되는 걸 막기 위해 피부 가죽을 고정시켜 붙지 못하도록 막는다. 차가운 공기가 몸 안으로 밀고 들어와. 고통에 눈물만 뚝뚝 흘리며 지나간 과거를 계속 회상할 뿐이다. 울어도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피를 채취하고, 살 가죽을 일정 부분 뜯어가. 안에 있는 장기를 바라보며 인간과 다른 부분을 찾아내는 녀석들. 이젠 눈까지 가져가고 싶은지, 오른쪽 안구를 빼어내었다. 역시나 금방 회복되는 모습에 경이로움을 표하는 씹새끼들. 그 후 어느 정도까지 회복되는지 실험하기 위해 손가락, 손, 팔, 장기... 모든 걸 빼내었고. 역시나 계속 원 상태로 돌아가려는 몸이었다. 몇 번, 몇십 번, 몇 백 번, 몇 천 번.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나는 몸.


" ............. "

며칠이나 흘렀을까. 실험대에서 벗어나 유리로 된 벽이 존재하는 방에 가두어졌다. 그곳에서의 역할은. 커다란 식물 괴물에게 먹히거나, 이상한 약물을 계속 주입당하는 그저 도구일 뿐이었다. 피를 토하거나, 몸에서 나무껍질이 자라나고. 몸 안에 식물 뿌리가 돋아나 입에서 줄기를 내 뿜기도 했지만, 죽지 않고 계속 원상 복구될 뿐이었다. 아니면 자라난 식물은 금방 썩어 나가떨어질 뿐, 계속 내 몸에 기생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에겐 계속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어 기뻤겠지만.. 너무 괴로웠다. 몸에서 무언가 자라나 내 정신을 갉아먹고, 날 양분으로 삼아 자라나는 끔찍한 자연의 무언가 들. 심한 경우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 전체가 딱딱하게 굳어가기도 했다. 물론 다시 살아났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어떤 방식으로든 날 썩히고 정신을 죽여갈 순 있었지만. 신체의 정지는 이뤄내지 못하였다. 더 충격적인 건, 그녀는 이젠 날 동등한 인격체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죽어가는 날 보고도 기계적으로 무언갈 써 내려갈 뿐. 나라는 비료가 씨발새끼들에게 가공되어 그들만의 업적으로 채워지고 있다. 억울해. 이렇게 태어난 거 자체가 죄인 걸까.

" ..친구라고.. 했으면서...... "

아직 난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가 보다. 이걸 쉽게 믿고 유대를 쌓아가는 걸 즐기는 어린애. 나와 함께 지냈던 녀석은, 오늘따라 눈앞에 아른거려서 슬퍼졌다. 그저 방 안에 있는 구석에 웅크린 채, 다음 실험을 몸을 떨며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가끔씩 놔주는 주사는.. 내 능력을 억제하려고 놓는 주사인 거 같았다. 아직까지도 아무런 힘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녀석들의 사악한 기운을 빼앗으면 어둠의 힘으로 바꿀 수 있을 테지만, 아직도 이 지경인걸 보면.. 녀석들이 손을 쓴 게 분명하다.

" ........ "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 가져온 건 뭘까, 또 내 피를 사용해서 약을 개발했나 보군, 그 녀석들이랑.. 완전 똑같아. 그리고 그 연구원들과 같이 들어오는 네 모습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로 있었다. 이젠 나에 관해선 완전히 청산한 모양이야, 추억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랑 있으면 항상 안 좋은 일만 일어났을 테니까, 이미 원한은 쌓였으려나. 그걸 이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걸로 복수하는 걸까. 기분이 나쁘지만.. 자업자득이다, 억울하지만 기댈 곳도 없다. 차라리... 그냥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다면, 왜 그리워지는 걸까. 그리고 그녀는 직접적으로 이곳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지켜보고, 관찰하고, 나에게서 나온 분비물로 연구를 진행할 뿐이다.

" 파지.... 아파... 아프..다...고..... 왜.... "

지금까지의 호의와 시간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 하나하나 터지며 사라지는 느낌이다.


시간 개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인체 실험이 진행되었다. 정신도 망가진 상태로 실험에 응하기도 한다. 별생각 없다, 하하 또 죽이겠지 라며. 영혼마저 전부 쥐어 짜낼 생각인가. 이미 그들에겐 나에 대한 정보는 많이 흘러들어 갔겠지. 죽지 않은 건 기본에, 불사의 피. 어떠한 생명체도 생기를 빼앗아 버리는 거 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났다는 건, 결국 적응을 해낸다는 소리다. 그 녀석 멘탈이 약한 건지.. 아니면 내가 좋은 건지는 딱히 알 필요도 없지만.

" ..주사 맞은지는, 5일 정도 지났으려나. "

능력을 제어하고 통제하기 위해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하는 연구원들, 난 그걸 이용하여 나름대로의 계획을 짰다. 녀석들은 테러리스트 새끼들처럼 수시로 억압하고 계속 지속적으로 약을 집어넣지 않아. 마치 완전히 날 길들이려는 듯 복종하게 만들려는 모양인가 보지. 마치 동물처럼, 하지만 난 오히려 너희들보다 뛰어나, 악마가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체험하게 해 주마.


[주사 시간이다. 얼른 일어나도록.]

예정대로 녀석들은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위에는 당연히.. 그 개새끼가 있겠지. 가끔씩 식물에 파묻혀 죽어가는 나를 바라보며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는 방관자. 곧 네 야망도, 욕심의 결과물도 전부 부셔줄 테니.

" ..... "

말없이 피칠갑이 된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상대를 노려봤다. 주사를 한 손에 들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 기계적인 인간. 약물을 투여하려는 그의 한 손을 붙잡아, 손톱으로 피부를 파고들어 상대에게 고통을 주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상태로 입을 벌려 상대의 목덜미를 최대한 세게 깨물고, 비명이 새어 나지 않도록 그의 입을 막았다. 완전히 숨통을 끊으려는 듯 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상대를 물어뜯어, 상대가 완전히 의식을 잃을 때까지 목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 살점이 다 뜯겨나가 심각한 고통에 쇼크로 기절한 연구원. 오랜만에 입 안에 머금은 인육과 피는 내가 누구였는지를 상기하게 해 준다. 허기졌는지 배에서 신호를 보낸다. 오랜만에 직접 자신의 입으로 먹어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제대로 모를 법 한 사실은, 이렇게 내가 인간을 먹는 행위 자체가 힘을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배고파서 아무나 뜯어먹었을 거라고 생각한 녀석의 안일함을 여기서 보여줄 것이다.

" ...이제야 나가는구만, 뭐. 이 새끼들이 바보는 아닌 이상 CCTV로 보고 있겠지만. "

당연히 이 방 안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녀석들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곧 날 막으려는 연구원들이 들이닥치겠지. 이번엔 호락호락당하지 않을 것이다. 연구원이 쓰고 있던 마스크를 빼앗고, 연기에 관한 공격을 미리 차단한다. 어느 정도 힘이 돌아온 거 같기도 하지만.. 아직은 부족해. 대충 어느 정도의 능력을 쓸 수 있는지 짐작해보자. 그림자를 최대 몇 번 뽑을 수 있을련지. 싸워봐야 알겠지만.

[녀석이 탈출했다! 보안요원을 불러! 입구를 얼른 봉쇄해!]

들리는 다급한 녀석들의 목소리. 보기 좋게 탈출해주마, 그리고 그 끝은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로 마무리하도록 하지, 무장하고 다가오는 연구원들, 딱 힘을 되찾기 좋게 생긴 녀석들이다. 너희들까지 먹어치우고 위까지 올라가 주겠다고 다짐하고 싸우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 자..잠깐! 멈춰! 나야기! 너희들도 일단 가만히 있어봐..! "

깊은숨을 쉬며 무언갈 잔뜩 들고 온 모습이다. 아마 나한테 쓰려다가 이런 상황이 벌어질지도 예측 못한 건가. 악마를 가두었으면 그 죄 값을 치러야지. 이번엔 어떤 말을 준비했으려나.

" ..자! 나야기, 벌만 준다고 했어.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거지? 하하하... "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다. 혹여나 연구원들이 기습 공격을 하여 자극을 줄까 봐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하는 상대, 또 거짓말 치려는 거 다 알아. 안 믿어, 친구고 뭐고 넌 죽을 테니까.

" 안 그럴 테니까, 우린 친구잖아. 서로 믿어주는 게 친구 아니겠어? "

그녀는 나에게 친구라는 단어를 들먹이면서 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내 대답은 명확했다, 그 말을 하며 어색하게 웃는 상대를 보며 보란 듯이 이미 뒤로 그림자를 보내어 녀석들의 머리를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 시체를 하나씩 섭취하는 그림자 짐승들. 피가 흩날리는 모습을 보자 패닉에 빠져 천천히 뒷걸음질 치는 모습까지..

" 지랄하네. "

한 마디를 신경질 난 말투로 쏘아붙였다. 미간을 찡그린 채 근처에 있는 어둠을 흡수시켜 원래의 힘을 되찾는다. 급하게 가져온 약물 중 아무거나 써서 대응을 하려는 모습, 주변에 벌레가 몰려든다. 눈을 감고 상대에게 달려들어 위에 있는 식물 잎 같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덥석 잡는다. 힘을 주어 뜯어내니, 벌레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손에 쥔걸 저 멀리 던졌다. 그곳으로 몰려드는 녀석들, 그녀가 놀란 상태로 얼빠진 채 멍하니 바라보는 게 볼만하다. 아무런 소리도 못 내고 자신의 무력함에 좌절하겠지. 가까이 다가가 머리채를 잡고 당겨대며 비아냥댄다.

" 너도 당해봐야 이 소리 안 하겠지. 그치. 이대로 죽이기엔 너무 허무하잖아. "

난 그 자리에서 상대의 복부에 손을 찔러 넣었다. 따뜻한 감촉이 안에서부터 느껴진다. 한 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안에 있던 혈액이 역류하여 입 밖으로 줄줄 샌다. 이 새끼라면 피도 하얀색인 줄 알았는데, 정상적이네. 인간은 역시 뿌리는 전부 평범하다는 증거인가, 손을 넣은 상태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장기를 만져댄다. 다리가 완전히 풀린 채 주저앉는 상대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히 무릎을 굽혀준다.

" 어때, 죽을 거 같냐? 아~ 너 약 같은 거 많이 가져왔더라? "

상대 몸 안에 넣은 손을 빼고, 여러 가지 약품에 손을 댄다. 어떤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좋은 건 아니겠지, 킥킥 웃어대며 병의 뚜껑을 열고, 그대로 파인 복부에 약을 들이부었다.

" 실험할 거면 니 몸으로 실험하라고! 좆같은 방관자 새끼야! "

안으로 들어오는 액체에 고통을 느끼는지 다리를 몸을 바들바들 떨며 비명만 질러대는 상대를 보곤, 이제야 복수를 제대로 해준 거 같아 마음에 있던 응어리가 싹 다 내려간 기분이었다. 효과 같은 건 몰라, 네가 만들었으니 직접 그걸 느껴보는 게 제일 좋지 않겠어? 난 다른 약품들도 가져와선 하나는 입에다가 부어줬다, 상대의 볼을 한 손으로 잡아 누르고. 입을 강제로 벌리게 한 뒤. 그 안으로 지금까지 네가 만든 지식의 산물을 쏟아부어준다. 벌써 밑은 약품의 효과가 나타났는지, 안에 있는 장기에서 뿌리가 자라났다. 혈관이 굳어가고, 마치 나무뿌리 마냥 단단해진다. 촉진제라도 먹은 듯 금방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식물.

" 그렇게 식물 좋아하더니, 잘 된 결말 아니냐? 땅 속에 고스란히 묻어주는 게 좋으려나? "

악담을 실컷 퍼부으며 상대의 죽음을 조롱한다. 의식이 끊겨가고, 나오던 피도 자라나는 식물로 인해 막혀선 통과하질 못하고 있다. 풀려가는 눈과 잃어버린 초점, 몸의 떨림도 줄어든다. 죽어가는 거야. 그게 네 죽음의 형태.

" 아직 죽긴 일러. "

난 자신의 한 손을 절단하여 피가 흐르게 만들었다. 그리곤 상대의 복부에 피를 부었고, 입에다가도 억지로 넣어준다. 피를 억지로 삼킨 상대는, 의식을 찾아갔다. 나무는 피에 의해 점점 썩어가더니 몸에서 알아서 떨어져 나갔고. 내가 찌른 부위 또한 수복되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내 피는 처음에 말했듯이, 등가교환이다. 죽음에서 깨어난 대가가 어느 정도일까, 자.. 네가 원하던 결말이다. 잘 받아들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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